물리학에선 자연에 4가지 힘이 있다고 한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우리 일상에서 많이 느끼고 활용되는 힘은 중력이랑 전자기력이지. 중력 때문에 모두가 몸무게에 신경을 쓰게 되는 거고(많건 적건...), 전자기력 덕분에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밀고 당기고 뛰고 멈추고 할 수 있는 거지. 또 전자기력이라는 말 그대로 전자제품도 쓸 수 있게 해 주고, 라디오나 전화기, TV도 작동하고...
재밌는 게 뭐냐면, 우리말에는 이 전자기력이 모든 느낌과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모든 행위에 전자기력을 느끼는 방법인 '보다'를 붙여도 말이 된다는 거야. 당연히 전자기파인 빛은 우리가 '볼' 수 있고, 전자기력 덕분에 향기도 맡아 '볼' 수 있고, 음식도 맛'볼' 수 있고, 소리도 들어'보고', 마찰력 덕분에 걸어도'보고', 멈춰도'보고' 다 해'볼' 수 있단 말이지. 말해 봐, 들어 봐, 뛰어 봐, 공부해 봐...
물론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해 보다 형식으로 활용될 때 '보다'는 뭔가를 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닌 '시도하다'란 뜻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말이 그렇게 쓰일 수 있게 된 이유, 그리고 뭔가를 시도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보다'의 보다와 뭔가를 눈으로 확인한다고 할 때 '보다'가 같은 소리를 지니는 이유에 대해선 얘기하지 못하겠지. 관심도 없을 테고...
자, 아까 '~해 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도 참 재밌어. '해 보다'... 어떻게 읽으면 '해 보다', '해를 보다'처럼 보이기도 한단 말이야. '해'는 뭘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모든 빛의 근원이 되는 그 '해'란 말이지. 빛의 근원인 '해'를 '본다'라... 사실 해를 보는 건 쉽지 않지. 너무 눈이 부시고, 높고 멀어서 감히 다가갈 수도 없고. 또 너무 뜨거워서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그러한 '해'를 '본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모험과 시도가 아닐까? 아주 먼 옛날엔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 경배하던, 만물의 근원인 '해', 엄청난 중력으로 강력과 약력의 모습이 드러나고 우리에겐 전자기력을 내뿜는 그 '해'를 직접 '본다'는 건 정말 커다란 시도일 거라고. 그러니 '해 보다'라는 말이 뭔가를 결심하여 큰 것을 도모하다, 즉 시도하다란 뜻을 갖는 건 너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겠어. 그 '해'가 우리에게 주는 전자기파, 즉 빛을 '본다'는 것은 또한 커다란 자연의 은혜를 우리가 받는 일이겠지. 빛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살면서 뭔가를 하는 일, 해보는 일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 뭐든 해 보자구. 하물며 뭔가를 하자고 얘기할 때, '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뭔가를 눈으로 확인하다'라는 말(우리말로는 '보다')을 다른 행위와 함께 쓰는 말이 우리말 말고 다른 나라 말에도 있을까? (일본말이 그런 것도 같고...) 그렇게 쓰는 다른 말이 있다면 우리말과 어떤 관계일까?
이 전자기력이 일정하게 커졌다 약해졌다를 되풀이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이 되지. 그러한 빛에선 무지개에서 나타나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여러 색이 나오는데, 커졌다 약해졌다를 자주 반복할수록 자주색, 그러니까 보라색처럼 보이지. 물론 너무 느리게 변하거나 너무 빨리 변하면 사람이 볼 수 없어서 색을 갖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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