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반도 시간

색다른 틈 2021. 3. 10. 22:02

낮 12시, 그러니까 정오는 언제일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를, 뭔가 좀 이상해 보이는 물음일 수도 있겠다. 내친김에 다른 걸 또 물어보자. 가운데 손가락은 어디 있을까? 뭐 당연히 다섯 손가락 중 한가운데 있는 그 손가락이 가운데 손가락일 게다. 검지나 약지를 가운데 손가락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테지. 그런데 이런 이상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다시 시간 얘기로 돌아가보자. 하루는 24시간이고, 0시부터 시작해서 24시에 끝난다. 보통 낮과 밤이 12시간씩 있고, 가장 해가 높이 떴을 때가 낮 12시, 그리고 해가 반대쪽으로 넘어갔을 때가, 하루가 바뀌는 밤 12시다. 새벽 6시쯤 해가 떠서 밤 6시쯤 해가 진다. 처음 얘기한 낮 12시, 그러니까 정오는 해가 가장 높이 떠오른 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를 12시 30분이라고 한다. 마치 약지를 가운데 손가락이라고 하는 셈이다.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는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가 12시가 아닌 12시 30분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어렸을 때 한 번쯤 만들어 봤을 해시계로 시간을 재보라.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 시계는 그때가 12시 30분이라고 말할 거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이상한 나라이다.


해가 머리 위에 떴는데 12시가 아니라고???


그럼 우리는 왜 시간이 어긋나 있을까? 우주에서 버림받은 나라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이렇다. 나라마다 지구에 있는 자리가 달라서 해가 뜨는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 주변 나라들로 얘기를 해보면, 우리보다 동쪽에 있는 일본이 먼저 해가 뜨고, 그다음 우리, 그다음 중국... 이렇게 가다가 터키에도 해가 뜨고, 스위스, 그리고 영국까지 차례로 해가 뜬다. 지구 위에 나라가 있는 순서에 따라 차례로 해가 뜨고, 그래서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오는 시간도 저마다 다 다르다. 말 그대로 시차가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외국처럼 시간을 도입했을 때는, 세종대왕님이 그러셨듯 우리만의 하늘을 삼아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뭐 자주독립국가로서 자기의 시간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자기네 발 밑에 놓으면서 우리 시간을 빼앗고 자기네 시간을 심었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해가 먼저 뜨는 자기네 시간을 '야, 너흰 일본에 속하는 한 지역일 뿐이니까, 우리가 쓰는 시간 써. 우리가 관리하게 편하게. 어디 건방지게 너희가 뭔데 시간을 따로 쓰고 있어!' 이러면서 우리도 쓰라고 한 거다. 그래서 일본에선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12시일 때, 우리는 아직 30분이 남은 11시 30분인데도, 그때를 12시라고 하게 된 거다. 그리고 30분이 지나 우리 머리 위에 해가 왔을 때는 12시가 아닌 12시 30분으로 시계에 나오는 거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12시를 12시라 부르지 못하고 12시 30분이라고 부른다. 슬픈 나라다.


우리나라에 있는 말도 안 되는 다른 상황처럼 시간도 일본 것을 따르다보니 30분이 틀어졌다


북한은 한반도 시간에 맞춰 제대로 된 시간, 그러니까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를 12시로 하는 시간을 쓰고 있다가, 얼마 전 남북정상회의 때 통 크게(?) 우리 시간으로 맞췄다. 남북한이 시간을 통일했다는 점에서 좋게 볼 수도 있지만, 한반도 시간이 아닌 남의 시간으로 통일했다는 건 어쩌면 더욱 슬픈 일이다. 남북한이 시간을 맞추려 했다면 우리가 북한이 쓰던 제대로 된 한반도 시간으로 바꿨어야 했다. 이건 마치 공부 잘 하는 애랑 못 하는 애가 만나서 어울리다가 둘 다 성적이 떨어지는, 그런 상황이다. 웃프달까?

 

그럼 제대로 된 우리 시간, 그러니까 한반도 시간으로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일까? 그럴 리가 없다. 세상이 어느 땐데... 올림픽이 있던 시절에도 서머타임이라면서 한 시간 씩이나 바꾼 적도 있다. 그래도 그때는 일일이 손으로 시계를 고쳐야 했지만, 지금처럼 모든 시계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요즘에는 알아서 바뀐다. 우리는 그냥 늘 그랬듯 핸드폰 시간만 보면 되는 거다. 일본 시간을 쓰는 지금과 달리 우리 한반도 시간으로 바꾼다고 하면 알아서 핸드폰 시계는 바뀌어 있을 거란 얘기다. 마치 외국 여행 갔을 때 그 나라 시간으로 핸드폰 시간을 바꾸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바뀌어 있는 것처럼...

 

그런데 왜 바꾸지 않는 걸까?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30분 차이로 뭘 그런 걸 따지냐고도 하겠지.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30분이면, 48 중에 하나만큼 차이가 나는 거다. 사람 키로 따지면, 168cm인 사람의 경우, 3.5cm에 해당한다. 두 다리 길이가 3.5cm 차이가 난다고 보면, 이건 뒤뚱뒤뚱 걷게 되는 수준이다. 하루로 치면 당연히 30분 차이고, 아침에 30분을 더 잘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엄청난 차이다. 실제로 우리 한반도 시간으로 바꿀 경우, 회사에 예전처럼 8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면, 평소보다 30분 더 잘 수 있다. 자존심도 없이 시간마저도 남의 나라 시간에 얹혀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 하지 못하고, 남한테 빌붙어 살아야 하는 걸까?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그 시간을 왜 우리는 이렇게도 하찮게 보는 걸까?

 

해시계, 앙부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