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슬로건이라는 걸 또 만드는 모양이다. 어째 이런 건 정권이 바뀌거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바꾸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시 운영이 정치권 이해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겠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별생각 없이 일하는 듯한 모습이다.

어쨌거나 서울시는 세움말(슬로건)을 새로 만들겠다면서 보기를 누리집에 올려놓고 시민들한테 뜻을 구하고 있다(이 글 맨 아래에 달아 놨음).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도시로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다 외국말이다. (뜻하는 바나 내용이 딱히 그럴싸하지도 않고, 그저 말장난 같아 보이는 건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만드는 세움말에 왜 우리말은 없고 외국말만 있을까? 그리고 보기 중에 하나를 고른 까닭을 알려달라면서 또 몇 가지 보기를 적어놨는데, 그 내용도 참으로 우습다. 그럼 하나씩 얘기해 보자.
1. 세움말을 새로 만들면 도시경쟁력이 올라가고, 글로벌 도시로서 한 단계 도약이 될까?
어떤 학생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시험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법에 문제는 없는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것은 아닌지, 모르는 것을 잘 이해시켜줄 누군가가 주변에 있는지, 이런 걸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냥 책상에 'amazing student', 'study for me' 이런 문구 몇 개 적어 놓고 '이 중에 뭘 붙일까?' 이런 고민을 하면 공부가 더 잘 되고 성적이 올라갈까? 본질은 놓치고 쓸데없는 것에 힘 빼는 느낌이다. 서울시도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무대에서도 나름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지금 서울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기도 하고, 서울시 조직 내부에 문제는 없는지 자기반성을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문제를 찾았다면, 지금 서울시 상황과 만들고 싶은 서울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면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책상머리에 붙여 놓을 문장으로 뭘 쓸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도시경쟁력을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2. 보기글에는 왜 우리말이 없을까?
서울시가 마련한 네 가지 보기글을 보자. 'SEOUL for you', 'amazing SEOUL', 'SEOUL my soul', 'make it happen SEOUL' 이렇게 네 개다. 우리는 우리말이 있는데 왜 남의 말로 세움말을 만들어야 할까? 문자도 우리 문자인 한글이 아닌 알파벳이다. '문화 강국'이니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오래된 도시 서울', 뭐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도 이럴 때는 외국말로 도배를 한다. 도대체 뭔 정신인지 모르겠다. 담당자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위상 제고'라고 한다. 그럼 외국말로 하면 글로벌 위상이 올라가고, 우리말로 하면 떨어진다는 얘긴가? 아니 요즘 대한민국이 드라마나 가수, 영화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외국에 잘 알려지고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도 많은데, 우리말이 무슨 남에게 꺼내기 부끄러운 뭐라도 된다는 건가? 얼마 전에는 '오빠', '재벌', '막내', '한류' 이런 우리말들도 옥스포도 사전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일본말 '스시', '오리가미', '쓰나미' 이런 말도 일본이 아닌 다른 외국에서 많이 쓰이는데, 서울시 공무원 말대로라면 영어가 아니니까 외국에서 못 알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나 스스로 가진 게 없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자기 것을 떳떳이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남의 말을 빌려서 표현을 하는 건가? 그런 정신으로 일을 하니 자기들이 원하는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거 아닐까? 자기 스스로를 우습게 여기는데 누가 자기를 높게 쳐주겠는가? 노예근성이라고 해야 할까? 참 나약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 담당 공무원은, "지금까지 '글로벌 경쟁력'이 낮아져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영어를 썼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서울 세움말들은 다 외국어 아니었나? 'Hi, Seoul', 'I.Seoul.U'... 이런 게 다 외국말이었잖은가? 공무원 말대로였다면 지금까지도 외국말을 써 왔으니 국제 경쟁력이 좋아졌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낮아졌다고? 그런데 또 외국말을 쓴다고?? 도대체 무슨 말인가? 외국말로 세움말을 쓰면 국제 경쟁력이 좋아진다는 건가, 나빠진다는 건가??? 설마 외국어라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 지금 보기로 든 'SEOUL for you', 'amazing SEOUL', 'SEOUL my soul', 'make it happen SEOUL', 이렇게 네 가지만 국제 경쟁력이 생긴다는 얘긴가? 아니 그럼 왜 진작에 이걸 안 쓰고 이상한 것을 쓰고 있었나? 그리고 저 네 가지만 의미 있는 거라면, amazing 대신에 fantastic이나 dynamic 이런 걸 쓰면 안 된다는 얘긴데, 너무 우습지 않은가?
우리말로 말을 만들면 외국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외국말을 썼다고 해보자. 그런 까닭이었다면 우리말이랑 외국말을 같이 써도 되지 않는가? 'apple'이라고 쓸 때는 외국 사람이 알아듣지만, '사과(apple)'라고 쓰면 외국 사람이 못 알아듣는 건가? 서울을 알리려면 서울만의 특색, 다른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우리말과 한글로 세움말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말을 숨기라는 지시라도 있었나? 또한 외국 사람들 알아들으라고 만든 세움말이었다면, 시민을 대상으로 투표를 할 일이 아니라, 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 게 맞을 텐데, 그렇지도 않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3.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한 이유??
네 가지 보기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 다음에 나오는 물음도 웃기다. 그것을 고른 이유를 알려달라는 건데, 준비한 보기가 너무 단순하다. (위 그림 참고) 보통 설문에서 무엇에 관한 이유를 물을 때는 '기타'란도 만들곤 한다. 주어진 보기에서 고를 게 없을 경우 직접 글을 남길 수 있게 하려는 장치로서 말이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만든 두 번째 물음을 보면 그런 항목이 없다. 그저 서울시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다섯 가지 답변 중에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이유랑 다른 이유로 선택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담당 공무원한테 물어보니, 주관식 대답은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객관식으로만 문항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왜 객관식 문항만 만들었는지 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건 주고받는 소통이 아닌, 자기들 할 말만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마지막 선택지로 '위의 항목에는 해당하는 이유가 없음'이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이런 설문지 구조에 따르면, 모든 시민들이 서울시에서 제시한 서울 세움말을 '서울시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나, '미래방향과 비전을 잘 담고 있다'고,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이해가 간다'거나, '메시지가 간결하고 명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호감이 가고 참신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그 외의 생각은 없는 것이 이 설문조사에 응답한 사람들인 거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문항 구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지금 상황과 비슷하게 질문을 꾸며보면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다.
10평짜리 집에서 한 사람과 같이 평생을 살아야 한다.
다음 중 누구랑 가겠는가?
1. 탈옥한 범죄자
2. 사이코패스
그 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1. 키가 커서
2. MBTI가 나랑 맞아서
뭐 이런 식이다. 선택할 거리가 없는 것들로만 문항이 구성되어 있는 질문인 거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런 질문으로 시민들과 소통했다면서 즐거워하고 있겠지. 문제가 없다는 담당 공무원은 내가 만든 질문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덧1. 그 누리집에서 볼 수 있는 질문지를 보면, 질문 위에 조그마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최소 1개 및 최대 1개를 반드시 선택해주십시오.' (위에 붙여 놓은 그림 참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최소 1개 및 최대 1개???? 그냥 '하나만 선택해 주십시오.' 이렇게 쓰면 되지 않는가? 말 참 복잡하게 한다.
덧2. 누리집 첫 화면에 이런 말이 있다. '서울을 매력적인 브랜드로 떠올리게 할 서울브랜드 슬로건 시민 선호도 조사' 무슨 외국말이 이리도 많은가? 그리고 서울브랜드는 또 뭐고 슬로건은 또 뭔가? '~적(的)'이란 일본말법은 왜 또 이리도 많이 쓰나? 그냥 이렇게 쓰면 안 되나? '서울을 매력 있는 도시로 떠올리게 할 서울 세움말을 뽑아주세요'
이번 글에서 나는 슬로건을 세움말로 바꿔 썼다. 슬로건이라는 외국말 대신 우리말로 바꿔 쓰고 싶어서다.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지, 어떻게 세울지 다짐하는 말이라 세움말이라고 해봤다.
덧3. 누리집에는 투표취지라면서 이런 글을 써놨다.
서울시는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도시로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브랜드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2022년 8월부터 9월까지 서울의 고유 정체성과 매력, 비전을 찾는 시민공모를 추진하여 도출된 핵심가치를 토대로 미래와 전통이 공존하고,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의 비전을 담은 슬로건 후보(안)을 선정하여 선호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통이 공존한다는데 우리말과 글은 없고, 약자와 동행한다면서 외국말로만 써 놓은 '슬로건'을 만든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 도대체 그들에게 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자기들이 하는 일에 의견을 내놓을 필요는 없는, 그냥 들러리만 서 주면 되는 그런 사람들일까?
https://mvoting.seoul.go.kr/mvoting/voting/hotissue/selectHotissue.do?vote_no=73843
서울브랜드 슬로건, 여러분의 선택은?
서울시는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도시로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브랜드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br />2022년 8월부터 9월까지 서울의 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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